Category : designer story

23:18 , 2014/09/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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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디자이너

미래 apple사 디자인실장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음.

진정 산업 디자이너인 듯..

카림라시드나 필립스탁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지만

마크뉴슨은 여러분야에서 산업디자인을 진행. 제품의 완성도가 높고 디테일함.

Marc Newson's aluminium Lockheed Lounge.

Marc Newson’s iconic aluminium Lockheed Lounge.

 

Marc Newson is Australia’s most successful contemporary designer. Since graduating from Sydney College of the Arts in 1984, he has worked in Japan, Italy and France and currently runs a high profile international practice in London. During his 20-year career he has designed, amongst other things, furniture, lighting, interiors, watches, home wares, a bike, a concept car and a jet. Most recently Newson has designed the Qantas business-class Skybed and first class lounges in Sydney and Melbourne as well as the new Qantas A380 Airbus interiors. He appears regularly in international design journals and his work is represented in collections throughout the world.

Newson first displayed his iconic ‘Lockheed Lounge’ in his graduation exhibition at Sydney College of the Arts in 1983. He then launched a commercial version in 1986 at a Sydney gallery where it created a sensation. Produced in a limited edition since the late 1980s, it is now an international design icon.

Description

Chaise longue, ‘Lockheed Lounge’, fibreglass / aluminium / polyester resin / polyurethane, designed by Marc Newson, made by Marc Newson and Eckhard Reissig, Sydney, New South Wales, Australia, 1988-1990.

Chaise lounge of continuous curve shapes formed around a reinforced fibreglass shell. The lounge is clad in aluminium sheets which are beaten to shape and fitted by hand with blind rivets. The lounge has three legs with slightly curved feet, one the the front and two at the rear.

Made: 1988 – 1990
 Registration number

91/1309-1

08:06 , 2014/08/2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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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브랜드들은 성공하려면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로맨틱한 사람”이 책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비트라 (Vitra)의 소유주이자 이사인 롤프 펠바음이 말했다.

 

“디자인 회사의 리더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로맨틱한 사람이고 이것은 외부사람에게는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라고 펠바움은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그것은 또 위험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너무 열정이 지나쳐서 사업을 망칠 수도 하기 때문이다. 사업과 꿈의 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스위스 가구 브랜드인 비트라의 전 회장인 펠바움은 클러큰웰 디자인 위크 (Clerkenwell Design Week)에서 디진 (Dezeen)과 인터뷰하고 디자인 뮤지엄 (Design Museum)의 관장인 데이언 수직 (Deyan Sudjic), 디자이너 파트리샤 우르퀴올라 (Patricia Urquiola)와 디자인의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모든 디자인 회사들이 만드는 것을 모두 합쳐도 이케아 (Ikea)가 만드는 것의 1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론에서 말하면서 펠바움은 디자인 업계의 작은 규모를 강조했다.

 

작년에 비트라는 1935년에 핀란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 (Alvar Aalto)가 설립한 가구 브랜드 아르텍 (Artek)을 인수했고 펠바움은 그 거래가 엄밀한 사업 원칙보다는 알토의 작업에 대한 그의 오랜 애정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실토했다.

 

 

아르텍을 위한 알바 알토의 스툴 (Stool) E60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토를 사랑해왔다.” 그는 말했다. “나는 어느 회사를 인수하는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르텍이 단 하나의 예외다.”

가족소유 기업인 비트라는 펠바움의 부모인 빌리와 에리카 펠바움에 의해 1957년 세워졌다. 그는 1977년부터 회사의 일상적 운영 책임을 맡았지만 최근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조카딸인 노라 펠바움이 브랜드의 지휘권을 물려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가족소유 회사들의 승계문제는 디자인 업계에서 많은 실패를 초래했다고 펠바움은 말했다.

“가족들이 더 이상 관심이 없거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 (회사는) 팔리게 된다”고 펠바움은 말했다. “이와 같은 합병은 디자인계의 입장에서는 불운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결국 디자인 회사는 규모가 다소 작을 때, 아주 개인적일 때, 디자인에 미친 사람, 디자인을 사랑하고 다른 무엇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지휘할 때 최상의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다음은 펠바움과의 인터뷰를 옮긴 것이다.

 

 

 

 

 

마커스 페어스 (Marcus Fairs): 이 시대에 가구가 제작되고 판매되는 방식을 바꾸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롤프 펠바움: 가장 큰 문제는 유통이다. 작은 회사들은 유통에 문제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회사들이 가족기업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업이 잘 되는 동안에는 디자인 회사에 유리하다. 그러나 가족이 더 이상 사업에 관심이 없어지거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 회사는 팔리게 된다. 이와 같은 합병은 디자인계의 입장에서는 불운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결국 디자인 회사는 규모가 다소 작을 때, 아주 개인적일 때, 디자인에 미친 사람, 디자인을 사랑하고 다른 무엇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지휘할 때 최상의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너무 열정이 지나쳐서 사업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점점 회사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놀 (Knoll)이나 허먼 밀러 (Herman Miller) 같은 훌륭한 회사들이 있지만 신흥 인재가 파트너를 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업과 꿈의 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난 40년간 수많은 디자인 회사들이 사라지고 더 큰 기업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았다.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두 세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마커스 페어스: 이탈리아의 많은 가족소유 브랜드들은 최근 곤란을 겪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소유구조 때문인가 아니면 더 큰 요인들 때문인가?

 

롤프 펠바움: 세대 교체가 아주 잘 이루어지는 사례들도 있다. 예를 들어 플로스 (Flos) 는 아주 뛰어난 회사인다 아버지인 세르지오 간디니 (Sergio Gandini)의 뒤를 이어 피에로 간디니 (Piero Gandini)가 뛰어난 지도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카시나 (Cassina)를 비롯한 다른 회사들의 경우에는 잘 되지 않았다. 카시나는 굉장한 회사였는데 정말 유감스럽다.

 

그리고 카펠리니 (Cappellini)가 있다. 나는 줄리오 카펠리니가 한 일을 존경한다. 그는 매우 멋진 사람이지만 사업 쪽은 잘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그가 디자인계에 남긴 영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렇듯 두 세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디자인 회사의 리더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로맨틱한 사람이고 이것은 외부사람에게는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런 꿈에 끌려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사업과 꿈의 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회사가 단지 사업이 아닌 프로젝트가 되기를 바란다

 

 

마커스 페어스: 당신은 어떻게 비트라의 생존을 이어가는가?

 

롤프 펠바움: 확실한 건 모른다. 비트라는 가족 사업으로 유지되고 있다. 내 조카인 노라 펠바움은 2년 쯤 전 사업에 합류했고 점차 역할이 커지고 있다. 내가 옆에서 도울 수 있지만 그녀가 책임을 맡을 것이고 나는 매우 낙관적이다. 그녀도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회사가 단지 사업이 아닌 프로젝트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확신할 수는 없다.

 

마커스 페어스: 수많은 다른 가구 디자인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비트라가 발전을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롤프 펠바움: 스틸케이스 (Steelcase) 같은 회사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지극히 작은 회사이다. 그러나 다른 일부 회사들과 비교해볼 때 아마도 우리는 일정 수준에 도달해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디자인에 대한 믿음, 디자인에 관한 작업, 아주 개인적인 방식에 의한 디자이너들과의 작업, 그리고 동시에 사업에 대한 세심한 노력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업가인 동생 (비트라의 공동소유주인 레이몬드 펠바움 (Raymond Felbaum))이 계속 나와 함께 있어준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에 넘치는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생산이기도 하지만 문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마커스 페어스: 아르텍 인수에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

 

롤프 펠바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토를 사랑해왔다. 내가 80년대에 수집을 시작했을 때 내가 중점적으로 모은 것은 임스 (Eames), 넬슨 (Nelson), 알토, 프루베 (Prouve) 였다. 나는 항상 언젠가 프루베와 알토의 작품을 만들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000년 무렵 프루베가 시장에 나왔고 우리는 프루베의 판권을 사들였다. 그리고 내가 아르텍의 소유주인 스웨덴 프로벤투스 투자은행이 20년간의 소유를 끝내고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20년 전에 이미 내가 그들에게 언젠가 팔고 싶으면 내가 관심을 가질 거라고 말했던 것을 회상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함께하게 되었고 비트라의 힘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독립을 유지하는 매우 흥미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우리는 현재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커스 페어스: 또 다른 인수 가능성이 있나?

 

롤프 펠바움: 아니다. 나는 회사를 사는데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아르텍이 유일한 예외였다. 아르텍은 또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단지 회사가 아니다. 아르텍은 1935년에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 (Aino Aalto), 그리고 미술 프로모터 마이레 굴릭센 (Maire Gullichsen), 미술사가 닐스 구스타브 할 (Nils-Gustav Hahl))가 함께 설립했고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했다. 그래, 그것은 생산이기도 하지만 문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흥미를 갖게 한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트라와 다른 점이지만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정체성이 있고 그것을 바꾸고 싶지 않다.

 

 

 

Originally Published by Dezeen (www.dezeen.com)

http://designdb.com/

23:34 , 2014/08/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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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레온 란스마이어 (Leon Ransmeier)

 

직업

산업 디자이너활동

 

지역

뉴욕시 뉴욕

 

 

진행 중인 프로젝트

얼마 전 이탈리아 브랜드 마티아치(Mattiazzi)에서 키아로(Chiaro) 의자를 출시했다. 현재 허먼 밀러(Herman Miller)와 헤이(HAY)를 위한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션

움직이는 과녁이다.

 

란스마이어의 최신 제품은 이탈리아 브랜드 마티아치를 위해 디자인한 키아로(Chiaro)이다.

 

키아로는 팔걸이가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이 있으며 둘 다 쌓을 수 있다.

 

 

언제 처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

내가 18살 때 처음 1980년대의 과격하고 시적인 디자인을 접했다. 그 때가 1997년이었는데 네덜란드의 작품들에 크게 관심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알토(Aalto), 브로이어(Breuer), 프루베(Prouvé) 등 초창기 모더니스트들에게도 매료되었다. 1999년 DIA에서 나를 기절할 정도로 놀라게 한 로버트 어윈의 작품을 본 날 로버트 벤투리의 책을 읽고 있던 게 기억난다. 수많은 접근 방법과 언어 사이의 긴장이 나를 빨아들였고 아직도 그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학력

2001년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가구 디자인 프로그램을 전공했다.

 

첫 디자인 작업

메일린(Mayline) 가구에서 1:1 나무 의자의 드로잉 작업을 했다. 길게는 2개월이 걸려 드로잉 하나를 완성하고 인도로 청사진을 보내 제품을 만든 다음 몇 주 후 상자에 싸여 배송되는 프로토타입을 받았다. 당시에는 굉장히 느린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지금 나의 프로젝트들은 그 때보다 훨씬 느려졌다.

 

당신의 디자인 영웅은?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흥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끔은 예술과 건축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허먼 밀러(Herman Miller)를 위해 디자인한 AGL 테이블 그룹(AGL Table Group)은 중역용 책상이나 회의실 테이블,

또는 가정에서는 식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묘사하면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en)에 위치한 건물 꼭대기에 있는 철로 된 작은 물결 모양의 상자이다.

 

컴퓨터 외에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는?

연필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점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나쁜 점은?

관리 업무가 싫다.

 

AGL 테이블 그룹(AGL Table Group)은 전력을 연결할 수 있는 버전과 연결할 수 없는 버전이 있다.

전력을 연결할 수 있는 버전은 책상 아래에 콘센트가 달린 트레이가 있다.

 

 

몇 시에 일어나고 자는가?

요일에 따라 다르다.

 

늑장을 부리는 방법은?

산책을 한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이나 비법이 있다면?

산책을 권하고 싶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예리한 관찰력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면?

“디자인”은 트렌드나 정말 탐나는 라이프스타일 이상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분자에서 도시까지 완전히 디자인되어 있다.

 

리볼버(Revolver)는 똑똑한 기능이 있는 회전식 바 스툴이다.

아래쪽 원에 볼 베어링이 들어 있어 의자를 돌릴 때 발받침도 함께 돌아간다.

 

 

가장 아끼는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내 책들

 

지금 이 순간 디자인에서 당신을 신나게 만드는 것은?

오브제를 경험하는 것

 

무엇이든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면 고르고 싶은 것은?

내 사무실을 끊임없이 다시 디자인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은?

집짓기.

 

끝으로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중 가장 재미있는 술친구는?

  바보 같은 질문이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www.core77.com)

 

 

이름

레온 란스마이어 (Leon Ransmeier)

 

직업

산업 디자이너활동

 

지역

뉴욕시 뉴욕

 

 

진행 중인 프로젝트

얼마 전 이탈리아 브랜드 마티아치(Mattiazzi)에서 키아로(Chiaro) 의자를 출시했다. 현재 허먼 밀러(Herman Miller)와 헤이(HAY)를 위한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션

움직이는 과녁이다.

 

란스마이어의 최신 제품은 이탈리아 브랜드 마티아치를 위해 디자인한 키아로(Chiaro)이다.

 

키아로는 팔걸이가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이 있으며 둘 다 쌓을 수 있다.

 

 

언제 처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

내가 18살 때 처음 1980년대의 과격하고 시적인 디자인을 접했다. 그 때가 1997년이었는데 네덜란드의 작품들에 크게 관심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알토(Aalto), 브로이어(Breuer), 프루베(Prouvé) 등 초창기 모더니스트들에게도 매료되었다. 1999년 DIA에서 나를 기절할 정도로 놀라게 한 로버트 어윈의 작품을 본 날 로버트 벤투리의 책을 읽고 있던 게 기억난다. 수많은 접근 방법과 언어 사이의 긴장이 나를 빨아들였고 아직도 그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학력

2001년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가구 디자인 프로그램을 전공했다.

 

첫 디자인 작업

메일린(Mayline) 가구에서 1:1 나무 의자의 드로잉 작업을 했다. 길게는 2개월이 걸려 드로잉 하나를 완성하고 인도로 청사진을 보내 제품을 만든 다음 몇 주 후 상자에 싸여 배송되는 프로토타입을 받았다. 당시에는 굉장히 느린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지금 나의 프로젝트들은 그 때보다 훨씬 느려졌다.

 

당신의 디자인 영웅은?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흥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끔은 예술과 건축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허먼 밀러(Herman Miller)를 위해 디자인한 AGL 테이블 그룹(AGL Table Group)은 중역용 책상이나 회의실 테이블,

또는 가정에서는 식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묘사하면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en)에 위치한 건물 꼭대기에 있는 철로 된 작은 물결 모양의 상자이다.

 

컴퓨터 외에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는?

연필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점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나쁜 점은?

관리 업무가 싫다.

 

AGL 테이블 그룹(AGL Table Group)은 전력을 연결할 수 있는 버전과 연결할 수 없는 버전이 있다.

전력을 연결할 수 있는 버전은 책상 아래에 콘센트가 달린 트레이가 있다.

 

 

몇 시에 일어나고 자는가?

요일에 따라 다르다.

 

늑장을 부리는 방법은?

산책을 한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이나 비법이 있다면?

산책을 권하고 싶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예리한 관찰력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면?

“디자인”은 트렌드나 정말 탐나는 라이프스타일 이상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분자에서 도시까지 완전히 디자인되어 있다.

 

리볼버(Revolver)는 똑똑한 기능이 있는 회전식 바 스툴이다.

아래쪽 원에 볼 베어링이 들어 있어 의자를 돌릴 때 발받침도 함께 돌아간다.

 

 

가장 아끼는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내 책들

 

지금 이 순간 디자인에서 당신을 신나게 만드는 것은?

오브제를 경험하는 것

 

무엇이든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면 고르고 싶은 것은?

내 사무실을 끊임없이 다시 디자인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은?

집짓기.

 

끝으로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중 가장 재미있는 술친구는?

  바보 같은 질문이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www.core77.com)

http://www.designdb.com

 

23:31 , 2014/08/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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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티엔드라 파칼레 (Satyendra Pakhale)

 

직업

디자이너

 

활동 지역

암스테르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너무 많다. 주로 산업 디자인 분야이고 건축과 전시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미션

꽤 심각한 질문인데 쉽게 말하면 사람다운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켄게리 노마딕 래디에이터 (Kangeri Nomadic Radiator), 이달 초 밀라노에서 출시된 이동식 래디에이터

 

레디에이터 사진 제공, 이탈리아의 티치아노 로시(Tiziano Rossi).

디자이너 사진 제공, 사티엔드라 파칼레 어소시에이트 (Satyendra Pakhale Associates)

 

 

언제 처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

나는 산업화가 되지 않은 시절의 인도에서 자랐고 인도는 여전히 산업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쓴다. 장난감은 장난감 가게에서 사는 게 아니라 나무를 주워 목수에게 가져가 자기 장난감을 직접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리고 더 나은 능력과 자원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바로 오늘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선택한 적이 없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발견한 시점이 있기는 했다. 학교 도서관 중 하나에서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쓴 작은 책을 찾았다. 인도 한 가운데서 그 책을 전부 읽어 내렸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학력

나는 인도 공대(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Bombay)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인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위스의 아트센터 유럽(Art Center College of Design Europe)에서 석사 후 심화 프로그램(post-master's program)을 이수했다.

 

첫 디자인 직업

인도에서 시계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일하려는 열의가 가득했고 어쩌면 너무 순진하고 지나치게 의욕이 넘쳤다.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CEO를 찾아갔는데 “여기서 6, 7, 8년이 지나면 시계를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의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손으로 사표를 써서 비서에게 주고 나와 버렸다.

 

당신의 디자인 영웅은?

디자인 영웅은 한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반적으로 위험하다. 역사적 인물들과 현재 활동 중인 사람들을 통틀어 수많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하다.

 

암스테르담의 파카할레 스튜디오 내부 전경. 사티엔드라 파카할레 어소시에이트 제공

 

자신의 작업실을 묘사하면

빛이 아주 많은 공간이다. 두 운하 사이에 위치해 양 쪽 모두 경치가 아름답다.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는 몇 년 동안 작업한 모든 것을 보관하는 커다란 공간과 모델과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컴퓨터와 서버와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의용으로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책과 파일 등 모든 것을 꽂을 수 있는 책장이 많다. 벽 대신 일본의 쇼지 도어(미닫이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텍스타일과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컴퓨터 외에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는? 흑연 6B 연필. 압사라(Apsara)라는 브랜드의 연필로 어릴 때부터 썼다. 아직도 같은 것을 쓴다. 그렇다고 이 연필이 없으면 미쳐버리는 건 아니다. 컴퓨터 태블릿이든 바닥에 숯으로 그리든 표면만 있다면 무엇을 쓰더라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점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나쁜 점은?

운영에 관한 것들이다. 그게 아마 최악일거다. 하지만 운 좋게도 지난 몇 년 간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일을 대부분 처리해 주었다.

 

문와카(Moonwaka)는 달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손과 눈의 협응(hand-eye coordination)을 돕는

“익살스럽지만 실용적인 도구”이다.

 

파칼레는 문와카가 나중에는 달에서도 제작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와카 사진 제공, 네덜란드의 대니 홀랜더(Danny Hollander)

 

몇 시에 일어나고 자는가?

절대로 정확한 적이 없다. 아침에는 6시 반에서 7시 반 사이에 일어나고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잔다.

 

늑장을 부리는 방법은?

그다지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 자주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편이다. 솔루션을 찾거나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것을 프로토타이핑하고 싶어지면 완전히 빠져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는 등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다른 과제를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늑장부린다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이나 비법이 있다면?

사실 창작에는,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비법은 없다. 하지만 내 습관을 생각해보면 가끔 책상을 정리하거나 밀린 통화나 이메일 등을 처리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사소한 일은 잊어버리고 과제에 집중한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호기심이다. 디자이너가 필요한 자질은 많지만 호기심이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그게 가장 첫 번째다.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면?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생활 여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구조적 도구라는 것이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종종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중문화에서 디자인은 표면, 허울, 색깔, 즉 미학이나 외관에 불과하다. 외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뿐 아니라 많은 일을 제대로 해낸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이 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나타 선반 시스템(Alinata Shelving System)은 책꽂이로도 사용할 수 있고 테이블로 쓸 수도 있다.

사진 제공, 이탈리아 에레티(Erreti)

 

애드온 래디에이터 (add-On Radiator)는 벽에 설치하거나 바닥에 두거나 공간 분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듈식 난방 기구이다. 사진 제공, 이탈리아 튜브스 라디아토리(Tubes Radiatori)

 

가장 아끼는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특별히 무엇을 수집하거나 보관하는 편이 아니다. 주변에 아무 것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여러 가지 물건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지만 대단한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아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넘어가기로.

 

지금 이 순간 디자인에서 당신을 신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더욱 광범위하게는 우리의 문화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우리의 손끝으로 버튼 하나만 눌러 지구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오늘날의 가능성이다. 물론 지구상의 디지털 격차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개인이 나머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정말 강력하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겨우 그 가능성의 표면만 살짝 경험한 것이다.

 

무엇이든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면 고르고 싶은 것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도의 철길을 달리는 기차들이다. 수많은 이들이 인도 기차의 비인간적인 상태와 형편없는 시설에서 겪는 고통을 보면 가슴 아프다. 인도 정부가 재정이 부족하거나 불가능해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하나를 꼽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이것 뿐 아니라 꽤 많은 것들을 다시 디자인하고 싶다.

 

앞으로 10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은?

그 때까지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더욱 깊은 관심과 현명한 감성을 갖추고 말이다.

 

끝으로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중 가장 재미있는 술친구는?

직종은 상관없을 것 같다. 어느 업계에 종사하든 어떤 사람이든 인생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거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www.core77.com)

 

 

이름

사티엔드라 파칼레 (Satyendra Pakhale)

 

직업

디자이너

 

활동 지역

암스테르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너무 많다. 주로 산업 디자인 분야이고 건축과 전시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미션

꽤 심각한 질문인데 쉽게 말하면 사람다운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켄게리 노마딕 래디에이터 (Kangeri Nomadic Radiator), 이달 초 밀라노에서 출시된 이동식 래디에이터

 

레디에이터 사진 제공, 이탈리아의 티치아노 로시(Tiziano Rossi).

디자이너 사진 제공, 사티엔드라 파칼레 어소시에이트 (Satyendra Pakhale Associates)

 

 

언제 처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

나는 산업화가 되지 않은 시절의 인도에서 자랐고 인도는 여전히 산업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쓴다. 장난감은 장난감 가게에서 사는 게 아니라 나무를 주워 목수에게 가져가 자기 장난감을 직접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리고 더 나은 능력과 자원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바로 오늘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선택한 적이 없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발견한 시점이 있기는 했다. 학교 도서관 중 하나에서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쓴 작은 책을 찾았다. 인도 한 가운데서 그 책을 전부 읽어 내렸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학력

나는 인도 공대(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Bombay)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인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위스의 아트센터 유럽(Art Center College of Design Europe)에서 석사 후 심화 프로그램(post-master's program)을 이수했다.

 

첫 디자인 직업

인도에서 시계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일하려는 열의가 가득했고 어쩌면 너무 순진하고 지나치게 의욕이 넘쳤다.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CEO를 찾아갔는데 “여기서 6, 7, 8년이 지나면 시계를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의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손으로 사표를 써서 비서에게 주고 나와 버렸다.

 

당신의 디자인 영웅은?

디자인 영웅은 한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반적으로 위험하다. 역사적 인물들과 현재 활동 중인 사람들을 통틀어 수많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하다.

 

암스테르담의 파카할레 스튜디오 내부 전경. 사티엔드라 파카할레 어소시에이트 제공

 

자신의 작업실을 묘사하면

빛이 아주 많은 공간이다. 두 운하 사이에 위치해 양 쪽 모두 경치가 아름답다.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는 몇 년 동안 작업한 모든 것을 보관하는 커다란 공간과 모델과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컴퓨터와 서버와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의용으로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책과 파일 등 모든 것을 꽂을 수 있는 책장이 많다. 벽 대신 일본의 쇼지 도어(미닫이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텍스타일과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컴퓨터 외에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는? 흑연 6B 연필. 압사라(Apsara)라는 브랜드의 연필로 어릴 때부터 썼다. 아직도 같은 것을 쓴다. 그렇다고 이 연필이 없으면 미쳐버리는 건 아니다. 컴퓨터 태블릿이든 바닥에 숯으로 그리든 표면만 있다면 무엇을 쓰더라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점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나쁜 점은?

운영에 관한 것들이다. 그게 아마 최악일거다. 하지만 운 좋게도 지난 몇 년 간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일을 대부분 처리해 주었다.

 

문와카(Moonwaka)는 달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손과 눈의 협응(hand-eye coordination)을 돕는

“익살스럽지만 실용적인 도구”이다.

 

파칼레는 문와카가 나중에는 달에서도 제작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와카 사진 제공, 네덜란드의 대니 홀랜더(Danny Hollander)

 

몇 시에 일어나고 자는가?

절대로 정확한 적이 없다. 아침에는 6시 반에서 7시 반 사이에 일어나고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잔다.

 

늑장을 부리는 방법은?

그다지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 자주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편이다. 솔루션을 찾거나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것을 프로토타이핑하고 싶어지면 완전히 빠져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는 등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다른 과제를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늑장부린다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이나 비법이 있다면?

사실 창작에는,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비법은 없다. 하지만 내 습관을 생각해보면 가끔 책상을 정리하거나 밀린 통화나 이메일 등을 처리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사소한 일은 잊어버리고 과제에 집중한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호기심이다. 디자이너가 필요한 자질은 많지만 호기심이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그게 가장 첫 번째다.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면?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생활 여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구조적 도구라는 것이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종종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중문화에서 디자인은 표면, 허울, 색깔, 즉 미학이나 외관에 불과하다. 외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뿐 아니라 많은 일을 제대로 해낸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이 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나타 선반 시스템(Alinata Shelving System)은 책꽂이로도 사용할 수 있고 테이블로 쓸 수도 있다.

사진 제공, 이탈리아 에레티(Erreti)

 

애드온 래디에이터 (add-On Radiator)는 벽에 설치하거나 바닥에 두거나 공간 분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듈식 난방 기구이다. 사진 제공, 이탈리아 튜브스 라디아토리(Tubes Radiatori)

 

가장 아끼는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특별히 무엇을 수집하거나 보관하는 편이 아니다. 주변에 아무 것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여러 가지 물건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지만 대단한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아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넘어가기로.

 

지금 이 순간 디자인에서 당신을 신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더욱 광범위하게는 우리의 문화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우리의 손끝으로 버튼 하나만 눌러 지구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오늘날의 가능성이다. 물론 지구상의 디지털 격차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개인이 나머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정말 강력하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겨우 그 가능성의 표면만 살짝 경험한 것이다.

 

무엇이든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면 고르고 싶은 것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도의 철길을 달리는 기차들이다. 수많은 이들이 인도 기차의 비인간적인 상태와 형편없는 시설에서 겪는 고통을 보면 가슴 아프다. 인도 정부가 재정이 부족하거나 불가능해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하나를 꼽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이것 뿐 아니라 꽤 많은 것들을 다시 디자인하고 싶다.

 

앞으로 10년 내에 하고 싶은 일은?

그 때까지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더욱 깊은 관심과 현명한 감성을 갖추고 말이다.

 

끝으로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중 가장 재미있는 술친구는?

직종은 상관없을 것 같다. 어느 업계에 종사하든 어떤 사람이든 인생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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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3 , 2014/08/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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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루카 니체토 (Luca Nichetto)

 

직업

디자이너

 

활동 지역

내게는 두 개의 스튜디오가 있는데 하나는 스톡홀름, 또 하나는 베니스에 있다. 그래서 두 개의 팀이 있고 나는 그 두 곳을 오고 가며 일한다. 보통 2주 동안 베니스에 있다가 2주를 스톡홀름에서 보내고 그 다음 일주일은 그때그때 다른 곳에서 지낸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현재 덴마크 브랜드를 위해 소파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고 또 데 라 에스파다 (De La Espada)와 새로운 가구 컬렉션을 개발하고 있다. 데 라 에스파다 제품 몇 가지는 지난 5월에 뉴욕에서 이미 선을 보였고 전체 컬렉션은 파리에서 2015년에 공개할 계획이다. 나는 또 포스카리니 (Foscarini)와 몇몇 스칸디나비아 브랜드 등 오래 관계를 유지해 온 몇몇 고객들과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션

지금 나는 디자인을 단지 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내기 위한 방법만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괜찮은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싶다. 작은 소품이건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건 간에 일단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면 곧바로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키게 되고 그래서 금세 당신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작은 공동체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디자인이 사회적 관점에서 정말로 좋은 도구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디자인이 일과 기회를 창출하고 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변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위, 아래: 데 라 에스파다를 위한 니체토의 새 가구 컬렉션에 포함된 엘리시아 (Elysia) 라운지 의자

 

데 라 에스파다를 위한 스탠리 (Stanley) 소파로렐 (Laurel) 테이블

 

 

언제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나?

솔직히 나는 결심한 적이 없다. 나는 베니스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섬 무라노에서 자랐고 그 섬은 유리 생산으로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그런 아주 창조적인 환경이 내게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술학교에서 유리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졸업 후 나는 유리 제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특별히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라노의 유명 브랜드인 살비아티 (Salviati)의 아트 디렉터를 만났고 그는 내게 살비아티에서 디자인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몇 개의 꽃병을 디자인했고 그 제품들은 곧 살비아티 브랜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 발길은 조명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포스카리니에서 일하게 되었고 2003년에 작업한 오 스페이스 (O-Space)라는 램프는 내게 꽤 많은 돈과 처음으로 나 자신의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또 다른 브랜드들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가구업계에서 한 회사가 내게 접근했고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

나는 베니스의 예술학교 (Institute of Art)에서 공부했고 그 후 베니스 건축예술대학 (University Institute of Architecture of Venice)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첫 디자인 작업

내가 앞서 말한 꽃병. 제품명은 밀레볼레 (Millebolle)이고 나는 그 제품을 2000년에 살비아티를 위해 디자인했다.

 

당신의 디자인 영웅은?

내가 디자인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정말로 디자인을 사랑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 과정에 중독이 되어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디자인은 단지 물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영웅들은 내 인생의 시기에 따라 바뀐다. 나는 때로는 야콥센 (Jacobsen)이나 베그너 (Wegner) 같은 스칸디나비아의 거장들을 흠모한다. 또 다른 때는 카스틸리오니 (Castiglioni)나 마지스트레티 (Magistretti), 소트사스 (Sottsass)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임스 부부 (Eameses)와 사리넨 (Saarinen)에게 심취한다. 한 명의 영웅을 고르는 것은 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카시나 (Cassina)를 위한 토레이 (Torei) 사이드 테이블

 

오펙트 (Offecct)를 위한 노츠 (Notes) 음향 패널. 사진 Thomas Harrysson Fotograf

 

카사마니아 (Casamania)를 위한 라디나 (La-Dina) 의자. 사진 Lera Moiseeva

 

 

자신의 작업장을 묘사하면

내 두 스튜디오는 거의 유사하다. 미팅 장소가 있는 열린 공간에는 내 동료들과 내가 함께 일하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프로토타입, 각종 재료와 샘플들로 가득 찬 책장이 있다. 양쪽 스튜디오 모두 지내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통적인 사무실 공간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좀 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이 좋다. 아, 그리고 양쪽 모두에 부엌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이외에 가장 중요한 도구는?

분명히 컴퓨터는 아니다. 나는 항상 스케치에서 출발하고 두 번째로 작은 모델 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그 다음에 우리는 렌더링과 라이노 (Rhino)를 이용한 모델링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멋진 3D 모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뒤에 있는 아이디어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고객사의 작업장과 협력하는 것. 이것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부분이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보고, 수정을 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현명한 절충안에 도달하는 것. 나는 그런 점에서는 상당히 구식 디자이너인데 왜냐하면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관계가 정말로 중요하고 그렇게 해서 최고의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나쁜 점은?

스타 시스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파티나 취임식, 홍보에 관련된 여러 일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네트워크 형성은 중요하지만 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비드 디자인 (David Design)을 위한 퐁뒤 (Fondue) 램프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 (Established & Sons)를 위한 파이프 (Pipe) 조명 시스템. 사진 Peter Guenzel

 

베니니 (Venini)를 위한 아릴로 (Arillo) 유리 꽃병. 사진 Archivio Venini

 

 

몇 시에 기상하고 몇 시에 잠자리에 드나?

나는 꽤 게으른 편이다. 보통 아침 10시나 10시 반에 스튜디오에 도착한다. 일을 마치는 시간은 저녁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이다. 그리고 잠은 새벽 1시에 잔다. 나는 아침에 두 세 시간 더 자고 저녁때 더 많이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나는 영화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업과 관련이 없는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서 직업과 무관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나는 요즘 여행을 자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 책을 읽거나 단순한 일들을 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신만의 팁이나 비결이 있다면?

아마 커피가 아닐까? 나는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에 물론 커피가 답이다. 그러나 물론 개인적으로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내 일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을 불어넣어준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아마도 창의적 관점의 재능이 중요했겠지만 오늘날의 디자인은 다분야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업가적인 자질도 필요하고 때로는 변호사, 때로는 경제 자문, 때로는 예술가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아주 많은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그런 자질 중 한 가지라도 없다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엄청난 재능으로는 충분치 않다. 나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젊은 디자이너들을 여럿 만났지만 가끔 그들을 보면 사업을 운영할만한 아이디어가 결여된 것이 보인다.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제품들을 팔아야 할 테고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그 물건을 팔아줘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하는 일과 관련된 업계에 대한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건 디자인에 대한 유럽식 개념일지도 모른다. 나는 뉴욕 디자인 위크 (Design Week)에 갔을 때 미국에서는 디자이너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미국의 디자이너 개념은 예술가적 관점과 훨씬 더 깊이 연관되어 있다.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작을 하고 있고 그런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들이 있다. 이건 내 의견일 뿐이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방식이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디자이너라는 것은 대량 생산 개념과 관계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잠깐 동안은 제작자가 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훈련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서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고 싶다면 회사들, 업계와 같이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많은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유리나 나무 같은 전통 재료를 가지고 일한다면 플라스틱 의자나 철 소재 램프를 만들라고 제안하는 회사와 같이 일할 기회를 영영 갖지 못할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는 매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한 가지는 우리가 하는 일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보수를 받느냐에 대한 것이다. 내 생각에 저작권 사용료 시스템은 아주 이상한 방식이다. 또는 어쩌면 회사들이 우리에게 지불하려는 비율이 예를 들어 판매원에게 주는 비율에 비해 아주 낮을지도 모른다. 가끔 디자이너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아이디어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있다.

 

내 생각에 또 다른 엄청난 오해는 디자인 교육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 학교들은 너무 많은 졸업자들을 배출한다. 실제로 그 모든 사람들이 할 만큼 일이 많지 않다. 어떤 면에서 이 학교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짓된 관념을 퍼뜨리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레올라 (Aureola) 티 세트 (왼쪽)과 수카바루카 (Sucabaruca) 커피 세트 (오른쪽, 아래)는

캐나다 브랜드인 묄크 (Mjolk)를 위한 니체토와 레라 모이세바 (Lera Moiseeva)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수카바루카. 사진 Juli Daoust Baker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관련 소지품은?

많지만 나는 특히 내 코브라 폰 (cobra phone)을 좋아한다. 그건 에릭슨 (Ericsson)의 최초의 전화 중 하나이다. 바닥에 번호 다이얼이 있고 뿔 같은 형태의 스피커가 있다. 이것은 내게 놀랍고 아름다운 물건이다.

 

현재 디자인에서 당신을 가장 신나게 하는 것은?

좋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뉴욕에서 친구 몇몇과 그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나를 정말로 신나게 하는 일은 없다. 내 생각에 우리는 디자이너를 흥분시키고 고객들을 매혹시킬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아주 특별한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뭔가를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공항이다. 나는 현재의 공항의 개념을 증오한다. 터미널에 들어가는 과정도 싫고 스캔을 위해 기다리는 것도 싫다. 특히 자주 여행을 하기 시작하면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다. 보안이 지나치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정말로 이런 종류의 공간을 더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10년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

타히티에서의 디자인 위크? 아니, 진지하게 나는 발전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디자인을 할 기회를 갖고 싶다. 무슨 선교사나 그런 종류가 아니라 현재 하는 디자인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정말로 의자나 지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그래서 좀 더 사회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 방식에 기반해서 행동하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서 누구와 술을 한 잔 하는 것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산업 디자이너이다.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잘 모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 여기 유럽에 있는 사람들은 유행을 쫓는 사람들 (hipsters)이다. 건축가들은 내게는 너무 진지하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편견이다. 그렇지만 산업 디자이너들은 좀 더 다방면에 균형이 잡혀있다. 나는 그들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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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 2014/04/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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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 만개.
난 드라마를 잘보지 않는다.
요즘 방영되는 한국드라마를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감성적인 것을 안다. 재미있다는 얘기다.
삼화네트워크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자기만의 색깔을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제작사이다. 요즘 시청률이 별로인데  재미까지 더하면 멀지 않아 미국드라마처럼 세계인이 좋아할만한 드라마가 한국에서 많이 제작 될것 같다. 중국에서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제작사와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하는것 같다.
시간을 내서 밀회, 별에서 온 그대를 봐야겠다.

23:39 , 2014/04/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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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

02:51 , 2014/04/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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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어서오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Hello. Thanks for Coming)”

by John Arlidge (http://time.com/jonathan-ive-apple-interview/)

애플의 디자인 수장은 컴퓨팅, 전화기, 음악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비밀주의의 회사와 Ive의 겸손함 덕분에, 인-뎁스 인터뷰를 지금껏 한번도 한 적이 없지만, 바로 지금 그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어서오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Jonathan Ive(이하 조너선 아이브)의 제품으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여행을 가고, 쉬고, 읽고,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한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가족들보다 그가 만들어낸 스크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가족들보다 그 스크린을 더 좋아할 것이고 말이다. 지난 수 년동안, 아이브의 타고난 수줍음과, 소속된 회사의 비밀주의가 겹쳐 우리는 미래를 그려내는 거장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 달, 그가 우리를 쿠퍼티노로 초대하여 이곳 디자인의 수장이 된 이후로 처음 인-뎁스 인터뷰를 가지게 되었다.

(인터뷰 하는 길은) 마치 신이 인터뷰를 허하지 않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잡스의 유령이었을까. 잡스는 애플 중역들이 인터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캘리포니아에는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구름이 많이 껴서, 금문교가 검정색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실리콘 밸리로 가는 280번 주간 고속도로도 평소의 흐름과 달랐다. 하지만 오전 10시가 지나자, 결국 아이브가 나타났다. 우리는 순백의 1층 애플 회의실에서 만났다.

“어서오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브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들어오며 그는 차를 한잔 내렸다. 아이브는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눈에 띄는 사람이다. 길에서 그를 보면 알아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아마도 당신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는 키가 그렇게 크지 않고, 건장한 몸에 대머리(머리가 조금 있긴 하다), 이틀 정도 기른 수염에, 주말에 아빠들이 입을법한 옷을 입는다. 그는 천천히 말하고, 앵글로 색슨 족 어투로 천천히 말한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억양은 전혀 변화가 없다. “수학(math) 발음을 잘 못하겠어요. 수학들(maths)은 하겠는데요. 그래서 그냥 수학을 풀로 다 말해버려요(mathematics). 발음이 웃기죠.” 그는 웃는다. 

아이브는 오늘 기분이 좋다. 오늘이 그의 47번째 생일이어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이번 인터뷰 시리즈 컨셉이 꽤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자신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만드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사물과 생산자는 분리할 수 없어요.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야 제품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는 “이 물건들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동작하고, 뭘 할 수 있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는 그 다음이예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장인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거죠.”

아이브는 스크류드라이버를 돌릴 수 있게 된 때부터,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의 장인정신은 아버지인 마이클(Michael)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대장장이 출신인데, 나중에는 Middlesex Polytechnic에서 공예, 디자인, 기술 분야의 강사를 역임한 바 있다. 아이브는 어린 시절 집안 물건들을 뜯었다가 재 조립하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아이브는 말한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은 말이죠. 부수면서 시작됩니다.”  라디오는 쉬운 편이었다. “자명종을 분해했는데 재조립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메인스프링을 다시 굽히기가 참…”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이폰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아직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만드는 것에 대한 애정은 3년 전 타계한 잡스와 공유한 부분이었다. 그 덕분에 현대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가장 창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20년이 약간 안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파산 직전이었던 애플을 이 지구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무려 6,650억 달러 이상 가는 기업으로 말이다.

아이브는 웃으며 말한다. “스티브와 전 보통 사람들이 전혀 보지 않을 것 같은 부분에 몇달이고 매달리곤 했었죠.” 애플은 밖에서 보이는 것 만큼이나 내부도 멋지게 만들기로 유명하다. “기능적으로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지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한거죠. 잘 만들 수 있는데, 보이는 곳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결국 좀 모자라게 되면 실패한 느낌이거든요.”

모든 제품에 i어쩌구를 붙이는 사람답지 않게, 아이브는 나(i)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는 그의 팀이나 잡스를 이야기하며 꾸준히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부끄럽다거나, 겸손이 과하다거나, 회사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주목받는 건 원치 않아요. 이런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데에는 큰 팀이 필요하거든요.”

아이브는 정말 검소하다.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디자이너 중 한명 치고는 말이다. 집도 한채밖에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하이츠 구역인데, 이웃으로는 오라클(Oracle)의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페이팔(Paypal)의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티엘(Peter Thiel), 그리고 배우 니콜러스 케이지(Nicholas Cage)가 있다. 그는 거기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영국 출신으로, 작가이자 역사가이다. 쌍둥이 아이도 있다. 아이브는 유명세를 피한다. 그와 그의 디자인 팀이 공개석상에 선 것은 딱 한번 밖에 없는데, 2년 전 런던에서 D&AD 디자인 상(https://www.dandad.org/)을 수상했을 때 였다.

간단히 말해, 아이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그의 제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혁명적이고, 하이테크의 마술상자라고 해도, 아주 우아하고 단순하게 생겨서 보자마자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알게 된다. 아이맥(iMac)은 복잡하고 쓰기 어려운 PC를 날려버리고, 컴퓨팅을 쉽게 만들어줬다. 그저 작은 하얀색 상자에 스크롤 휠을 단 아이팟(iPod)에 1,000곡의 노래를 담아내었다. 부드러운 터치감의 아이폰(iPhone)은 번거로운 블랙베리를 쓰레기통 행으로 만들어버렸다. 5살짜리 아이도 아이패드를 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심플함과 직관성에 대한 그의 사랑은 기술을 넘어선다. 그는 알루미늄 한 블록에서 잘라낸 것 같은 point’n’shoot 차들을 모은다. 벤틀리 몇 대와, 1960년식 애스턴 마틴 DB4를 가지고 있다. 이 차들은 10대시절부터 아이브가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는데, 아이브는 학교를 나오자마자 런던에 있는 몇개의 자동차 디자인 코스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러나 로열 컬리지(Royal College)에 입학하자, 마음이 확 바뀌어버렸다. “교실 안에 그림을 그리면서 ‘부릉 부릉!’ 하는 애들로 꽉 찼더라고요.” 말하는 지금에도 겁먹은 듯한 표정이다. 그래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뉴캐슬 폴리테크닉(Newcastle Polytechinc)에 입학했다. 그 곳에서의 작품들(특히 전화기, 보청기)은 너무 좋아서, 런던 디자인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뉴캐슬을 떠난 뒤, 로버트 위버 그룹(Robert Weaver Group)에 입사했는데, 대학시절부터 쭉 그를 지원해준 런던 디자인 에이전시이다. 그 곳에서 일하고 1년 뒤, 탠저린(Tangerine)으로 옮겼는데, 런던 헉스턴 스퀘어(Hoxton Square)에 위치한 신진 디자인 에이전시였다(확실히 과일이름을 딴 회사와 뭔가 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 그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부터 칫솔까지, 이것저것을 다 디자인했다. 그는 그가 동의할 수 없는 제품들을 만드는 데에 빨리 질려버렸다. 결정적인 계기는, 세수대야와 변기 디자인을 발표하러 헐(Hull)지역으로 운전하던 어느 비오는 날에 찾아왔다. 그날은 마침 BBC의 코믹 릴리프 데이(http://www.rednoseday.com/) 였는데, 거대한 빨간색 가짜코를 단 상사가 디자인이 너무 모던하고, 돈이 많이 든다며 디자인을 깐 것이다.

Part 2. 애플 다시쓰기 / 이 다음은 무엇인가

애플 다시쓰기

하지만 아이브가 마음에 들어한 클라이언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애플이다. 처음에는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포터블 컴퓨터의 초기 디자인부터 시작했는데, 그게 91년식 파워북이었다. 처음 애플을 접한 계기는, 기술적으로 잘 몰라서 컴퓨터 사용에 쩔쩔매고 있을 때였는데, 애플의 직관적인 마우스 사용 방식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심플하게 정리해주었다. 애플은 2년 동안 풀타임 계약을 제의했지만, 아이브는 망설였다. 당시 애플은 안좋은 상황에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엄청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계약을 했다. 92년의 일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좋지 않았다. 당시 애플의 제품들은 다들 둔탁했다. 뉴튼을 기억하는가? 디자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몇번이고 그만둘 뻔 했다. 하지만, 85년에 쫒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잡스가 아이브의 재능을 알아보고 둘이 본격적으로 이 따분한 세계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들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라도. 컴퓨터부터 카메라, 냉장고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에 손대는 다른 거대 전자기기 제조업체와는 달리, 애플은 단 3가지의 제품만을 만들었다.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기기, 그리고 휴대전화였다.

아이브는 애플 캠퍼스 한쪽 구석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 건물은 다른 애플의 베이지색의 콘크리트 블록 건물과 다를 바 없게 생겼지만, 한가지 큰 차이점이 있었다. 유리가 불투명하고, 아이브와 팀 핵심, 그리고 애플 경영진을 제외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우리가 작업중인 모든 걸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디자인이나 프로토타입같은 것들요.” 

그의 팀은 영국, 미국, 일본,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팀이 생각보다 작아요. 15명 정도? 대부분은 15-20년 동안 일한 사람들이죠.” “우리는 우리 작업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예요. 자존심 상하는 문제들은 오래 전에 사라졌죠.” 넓다란 스튜디오는, 아이브가 디자인한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하얗다. 애플 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같은 넓은 나무 벤치는 신제품을 위한 공간이다. 한쪽 구석엔 CNC들로 가득하다. CNC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쓰는 기계이다. 아이브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모두 만들기를 좋아하고, 이 일을 존중하죠.” 라고 말한다.

아이브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것이 어떤 종류가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동작해야 하는지부터 상상한다.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를 상상할 때는 어찌하는지에 대해서는 딱 한번 대답한 적이 있는데, 좀 의외의 장소에서 답을 구하는 편이라고 한다. 첫 번째 빅 히트 제품인, 오리지널 아이맥의 반투명한 젤리 빈 셰이드를 완성하기 위해 과자 제조업자들과 같이 일했다고 한다. 또 일본 북부의 니가타로 가서 장인들이 금속을 얇게 만드는 장면을 보고는, 티타늄 파워북을 만들었다. 티타늄 파워북은 무거운 검정 플라스틱 겉옷을 벗고, 얇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랩톱이었다.

그는 데스크톱 아이맥 스탠드의 형태를 잡기 위해 몇달이고 매달렸다. 아이브는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어떤 형태를 디자인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라고 말한다. 제품을 완성해 내었을 때 마다, 심지어 그게 첫 번째 아이팟에 딸려 나오는 신선하고 상징적인 이어버드였다고 해도, 아이브는 “이게 최선이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디자이너에게 내린 저주같은 고뇌죠.” 아이브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그리고 아이브는 그 고뇌를 잡스와 나누었다. 그걸 모든 상황에 적용해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이브는 잡스와 여행하던 때를 회상한다. “호텔에 가면요, 일단 체크인을 하고 전 제 방에 가죠. 가방을 문 앞에 두고 풀지 않아요. 그리곤 침대에 앉아 스티브가 전화하길 기다리는 거죠. ‘조니, 이 호텔 구려. 나가자’.”

잡스는 아직도 애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이브와 내가 만난 방 바깥에 잡스의 말이 크게 벽면에 인쇄되어있었다. “뭔가 괜찮은 일을 해냈다면, 그걸 계속 부여잡고 있지 말고 다른 멋진 일을 해보세요. 다음에 뭘 할지 궁리하세요.” 두 사람이 그렇게 잘 맞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둘은 매우 달랐다. 아이브는 젠틀하고, 대하기 쉬운 사람이다. 날카로운 아이디어는 따뜻함과 유머에 가려 많이 무뎌진다. 하지만 누구도 잡스를 대하기 쉬운 사람이나, 겸손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브는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에 말이죠. 실제로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이 완전히 같았어요.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호기심을 가졌죠.” 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잡스는 거칠까? 부하직원 – 심지어 경영진 레벨까지 – 을 모욕주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스티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죠. 하지만 제가 느낀 부분은 많이 달랐어요. 의견이 날카로웠고, 따끔할 수도 있죠. 질문도 많이 했고요. ‘이게 맞아?’ ‘이정도로 괜찮아?’ 같이 말예요. 하지만 스티브는 참 똑똑했어요. 아이디어는 대담했고, 엄청났죠. 방 전체를 숨죽이게 만들 정도였어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결국엔 뭔가 위대한 걸 만들어 낼거라고 믿기도 했죠. (결과를 만들어내는) 즐거움도 있었고요.”

이처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니, 제품 하나 – 아마도 아이폰 – 를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 현대에 나온 발명품 중 가장 많이 베낌 당한 제품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디어다. 아이브에 따르면 그와 그의 팀은 소비자들이 가격에만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뭔지도 모르는 저열한 제품들에 둘러 쌓여 있어요. 사람들이 그런거 별로 신경 안쓰니까 그런거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똑같다고 하면서 말예요.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신경쓴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미적인 부분만이 아니예요. 사람들은 세심하게 고려되고, 잘 만들어진 제품을 챙기죠. 우리는 (바라건대)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제품을 많이 만들고 많이 팔잖아요? 우리가 성공한 것은 순수함, 고결함의 승리인거죠. 그런 것들을 신경쓰는 것의 승리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애플 제품의 폐쇄성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다. OS도 폐쇄적이고, 새 제품이 나오면 새로운 충전기를 사야한다. 가격도 문제다. 만드는데 2불도 들지 않을 것 같은 플라스틱 충전기가 20불이라니! 충전기와 iOS는 애플 소프트웨어 팀과 팀 쿡에게 있어선 중요한 문제다. 계속 갈아치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이브도 인정한다. 고작 2007년에 나온 제품이고, 5번째 버전일 뿐인데 또 다시 새로운 충전기를 파니 말이다. 아이브는, “우리 회사하고 거리가 먼게 재사용, 계승이죠.” 라고 말한다. 예전 아이폰으로는 뭘 하냐고 물어보니 “어.. 뭐 그건 제께 아니고, 회사꺼죠.” 그렇다면, 회사는 뭘 할까? “ 재사용하거나, 전부 분해해서 재활용합니다. 질문의 의도는 알겠지만, 사실 인간의 조건 중 근본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 더 낫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잖아요. 그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고, 인생을 바꿀만한 제품인데 보자마자 사고싶게 만들려면 굉장히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애플 방식으로 제조를 하게 되면, 만족하는 기준이 훨씬 높기 때문에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말이다. “가격 때문에 기간을 늘린다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아이브는 웃으며 말한다. 그는 아이폰을 집어 들어 얼마나 복잡하게 설계되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바디는 단 한장의 머신 처리된 알루미늄(잡스가 흔히 지적하던 영국 액센트로)으로 만들어졌어요. 전체를 처음 엔 미러 처리로 다듬은 다음, 아주 고르게 텍스쳐 처리를 하죠. 애플 로고 부분만 제외하고요. 가장자리는 다이아몬드 컷팅 처리를 했는데, 컷팅 날이 오래 못가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대량 생산을 위해서 좀 더 오래가는 녀석을 만들어야 했고요. 카메라 커버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이예요. 심 카드 슬롯 주변의 디테일을 보세요. 엄청나죠!” 

그래, 멋지다.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고. 하지만 아이브가 말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다. 애플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고, 라이벌들(삼성같은)이 감히 경쟁조차 하기 힘든 제품을 판다면 가격은 맘대로 매길 수 있다. 애플은 2억 5천만대 정도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을 판다. 소비자들은 250억 곡의 노래와, 10억개의 TV 쇼 에피소드를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구매한다. 경쟁자들이 눈물을 훔칠 만한 마진을 내면서 말이다.

아이브는 그런 제품들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테크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것은 좀 의아했다. 기술을 만질 수는 없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에는 바퀴나, 구동 부위가 달려있지 않다. 아이브는 테크 쪽 제품들은 독창적인 것을 주고, 독창적으로 도전적이라고 말한다. “손에 들고 다니고, 귀에 꼽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들은 책상 위에 있는 것들 보다 훨씬 개인적이죠. 테크놀러지같이 어렵고 뭔가 배워야 하는 것들을 친근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들을 보고 애플에 끌렸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만드는 것들을 굉장히 친근하게 생각하잖아요.”

이 다음은 무엇인가

(사용자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지고있다. 새로운 화두는 웨어러블 기술이다. 구글은 웹 기반의 구글 글래스를 꺼내들었고, 삼성과 소니도 웹과 연결된 스마트 워치를 내놓았다. 애플도 아이워치를 낼까? “확실히 우리가 만들고 있다는 말이 있긴 하죠. 그리고 당연히 그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도 않을 거고요. 체스 게임 같은 거 아니겠어요?” 지금 그가 손에 차고 있는  Jaeger-LeCoultre 시계를 벗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AIDS 자선 경매를 위해서 직접 디자인하고, 세계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거라고 해도 말이다.

테크 분야의 문제가 바로 그거다. 너무 빠르게 변한다. 최고의 기기를 사도, 더 새롭고, 좋은게 나온다 – 대부분 아이브가 만든 것들이다. 애플 팬들이 무감각하다는 것이 아니고, 새로울 수록 좋아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새로운 아이폰을 사기 위해 애플 스토어 앞에 줄선 사람들을 보며 아이브는 사람들이 너무 새로운 것만 찾는다는 걱정을 하진 않을가? 너무 기술을 추종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말이다. 휴대폰은 그냥 휴대폰일 뿐, 예수 재림 같은게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의 반응은 대상 자체에 대한 것만은 아니예요. 뭔가 희귀한 것에 반응하는 거죠. 그냥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능한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에 반응하는 거예요. 무감각과 무신경함에 반대하는 움직임이라고 봐요.”

한시간 반 정도 가량의 인터뷰 동안, 아이브가 처음으로 위엄을 보였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공식적인 태도 이면에는 강철, 아니 알루미늄 심장이 있었던 것이다. 잡스가 만든 중역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어야 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디자인을 많이 참고, 아니 베끼고 있는 상황을 즐기는지, 짜증 나는지 물어보자, 다시 한번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도둑질이죠.” 아이브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바로 대답했다. “베낀건 그냥 디자인만이 아니예요. 수천 시간 고생한 걸 그냥 가져간거죠. ‘이정도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건데, 수년 동안 투자하고 고생해야하잖아요.” 잡스는 아이브의 분노를 몸소 실천했다. 에릭 슈미츠가 아이폰 대항마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사회 임원이었던 슈미츠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삼성에도 10억달러의 소송을 걸어 성공했다.

아이브는 잡스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며, “(잡스에 대해) 말하는 게 이상하고, 힘드네요. 아직도 떠난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거기엔 아마 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잡스가 타계한 후 애플은 덜컹덜컹 거렸다. 적어도 그들 자신의 높은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말이다. 홈 엔터테인먼트를 혁신할 애플 TV세트도 없었고, 시계도 (아직은) 없다. 주식도 슬럼프를 겪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타이틀도 놓쳤다. 혹자는 잡스가 떠난 이후로 전성기가 끝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前) 월스트릿 저널 테크 필자였던 유카리 이와타니 케인은 “유령에 사로잡힌 제국(Haunted Empire)”라는 책으로 날을 세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망쳤다고 말한다. 엄청난 제품을 너무 빨리, 많이 만들어서 더 이상 만들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고, 애플이 더 이상 엄청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아이브는 포기하게 될까?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저 자신이나, 친구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 것 같아요. 기준은 높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브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제품들이 만들어 질거고요. 기술 덕분에 이렇게까지 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한계 근처에도 오지 않았어요. 아직도 새로운 기분이예요.”

더욱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놓고도 아직 아이브는 배고프다고 한다. “애플에서는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와, 이걸 배우게 될 거고 다 배우고 나면 정말 대단한 걸 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애플은 완벽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을 모아놓으면 다들 그렇듯이요. 하지만 우리는 드문 자질이 있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왜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거죠.”

조니 아이브와 애플의 최고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은 걸까? “그러길 바라죠.” 그렇게 말하며 아이브는 식어버린 얼 그레이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따뜻한 캘리포니아 비를 뚫고 비밀 연구실로 돌아갔다. 내일을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느긋이 기다리지 않는다

http://radiofun.tumblr.com/post/80535184055/2

03:55 , 2014/01/18 0
Posted in: Blog, designer story

1월 중순부터 내 홈페이지에 접속자수가 증가했다.
웨어러블 관련 이상한 사진과 글을 posting 했는데 네이버에서 사람들이 검색을 엄청나게 했다는..
워드프레스의 힘이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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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 2014/01/11 0
Posted in: Blog, design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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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저렴하고  맛았는  음식점.
송도에 있어서  조금  멀긴 하다.